지도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현충사.
1967년에 준공된 콘크리트 한옥 건물이다.
이곳에서 매년 4월 28일 이충무공탄신 기념다례행제가 열린다.
충무공이 사시던 옛집.
21세에 전 보성군수 방진(方震)의 무남독녀와 혼인하면서, 처가집이 자연스럽게 이순신 장군의 본가가 되었으며,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왔다.
충무공이 태어난 곳은 서울 건천동(지금의 중구 인현동)이다.
옛집 대문 옆에 있는 정(井)자 모양의 우물이다.
후세 사람들이 충무정이라 불렀다.
무공의 셋째 아들 이면의 묘소이다.
이면은 어려서부터 인물이 출중하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해 충무공이 극진히 사랑하던 아들이었다.
21세에 마을에 침입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정조 때(1796년) 이조참의를 받았다.
옛집 옆 은행나무 2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것으로 충무공이 활을 쏘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 능선은 충무공이 말을 타던 곳으로 치마장(馳馬場)이라 불린다.
궁전, 관아, 능, 사당 등에 들어오는 길머리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이다.
사당의 경내를 표시하며 그 경건성을 유지하기 위한 성역임을 나타낸다.
1968년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것이다.
1932년 중건될 당시의 현충사 사당 이었다.
현충사 성역화사업으로 새 현충사가 지어지면서 1968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여기에 걸린 현충사 현판은 숙종이 내려준 것이다.
충신, 효자, 열녀에게 임금이 편액을 내려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걸어두는 것을 말한다.
현충사 정려는 이충무공과 그 후손 등 다섯 분의 충신·효자 편액이 걸려 있다.
1967년 현충사 경내·외를 구분하기 위하여 만든 정문이다.
사당의 외부 경역임을 알리는 외삼문(外三門)이라 할 수 있다.
충무공관련 유물과 임진왜란 당시 해전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전시·교육하기 위한 역사 테마관. 전시관, 교육관, 사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